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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역사

모나코와 프랑스의 관계

1. 모나코가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배경

모나코는 오랜 기간 동안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율성과 생존을 동시에 추구해야 했다. 특히 17세기부터 프랑스는 모나코에 대해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1641년 ‘페리뇽 조약(Treaty of Péronne)’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프랑스는 모나코의 독립을 인정하는 대신, 군사 보호권과 외교 자문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모나코는 명목상의 독립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당시 그리말디 가문은 스페인과의 동맹 관계를 정리하고 프랑스의 우호를 선택함으로써 외적의 위협을 피하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주권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에 의존하는 체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선택은 모나코가 생존하기 위한 현실적 전략이었지만, 수세기에 걸쳐 독립국이라는 지위에 균열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 조약 이후 프랑스와의 밀접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적 자주성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이로 인해 모나코는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존재감을 서서히 회복해 나갔다.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의 전설


2. 모나코 근대사의 전환점 –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그림자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전역의 정치 질서를 뒤흔들었고, 작은 도시국가 모나코 역시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793년 프랑스 혁명 정부는 모나코를 강제로 병합하고, 그리말디 가문은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로 인해 모나코는 약 20년간 프랑스의 지배 하에 놓였으며, 행정체계, 언어, 문화,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스식 제도가 도입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격화되면서 모나코는 전략적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그러나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유럽이 재편되는 ‘빈 회의’에서, 모나코는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 하에 독립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진정한 자주권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강대국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이처럼 모나코는 근대사 초입부터 자주성과 의존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외교적 진자 운동을 반복해야 했다.
그리말디 가문의 피난 생활은 모나코 시민들에게 정치적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안겨주었으며, 프랑스식 교육과 행정 시스템은 이후 모나코에 뿌리내리게 된다. 모나코는 독립 회복 이후에도 프랑스의 법적 영향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3. 모나코와 프랑스의 줄다리기 – 1861년 조약 체결과 독립의 의미

모나코가 프랑스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얻는 계기는 1861년에 체결된 ‘프랑스-모나코 조약’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프랑스는 모나코의 영토 중 멘통(Menton)과 로케브륀(Roquebrune)을 병합하고, 그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한편, 모나코의 자치권을 다시 한 번 인정하였다. 이는 외형적으로는 영토 축소라는 타격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나코가 독립국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되찾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 조약을 통해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서도 제한적인 자율성을 확보했고, 특히 세금 정책과 경제 제도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조약 이후 모나코는 카지노 산업을 육성하며 재정 자립도를 높였고, 프랑스와의 정치적 거리를 전략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외교적으로는 점진적인 독립성을 추구했다. 1861년 조약은 모나코가 단순한 보호국에서 실질적 독립국으로 탈바꿈하는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조약 체결 이후 모나코는 국제 사회에 독립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립해 나가며 다양한 외교 전략을 펼쳤다. 특히 카지노 수익을 바탕으로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외세의 간섭을 줄일 수 있었다.

 

 

4. 현대 독립국으로의 진화 – 모나코 헌법 제정과 유엔 가입

20세기 들어 모나코는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로 자리 잡기 위한 일련의 제도적 정비에 착수하게 된다. 1911년, 레니에 3세의 선친인 알베르 1세는 모나코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며 절대군주제를 제한하고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를 통해 왕권 중심의 정치에서 시민 참여가 이루어지는 정치체제가 성립하게 되었고, 이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줄이기 위한 내부 개혁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독립국 지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1993년, 모나코는 유엔에 정식 가입하게 되며, 명목상의 독립국이 아닌 국제법상 정식 주권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는 동등한 외교 파트너로 전환되었고, 모나코는 내부적으로는 세제 정책을 유지하며 자국 중심의 경제 모델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 세기의 노력은 결국 법적, 정치적, 국제적 독립으로 완성되었으며, 이는 모나코 역사에서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유엔 가입은 단순한 절차를 넘어 모나코의 외교 자주권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모나코는 국제 회의와 협약에 독립국가로서 참여하며, 자국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